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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긁적이기

'한국사 미스테리 60가지'에 대한 반박 - 2편

by 시간의지배자 2007. 10. 19.
16.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의 연구에 의해 삼국사기의 천체관측기록이 한반도가 아닌 현 중국대륙에서 이루어진 것임이 증명되었다.

===> 이는 앞으로 많은 연구가 더욱 필요한 부분입니다. 단지 이 이유하나로 삼국이 한반도에는 없고 대륙에 있었다는 증거는 되지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삼국의 유물이 천체관측지점에서 전혀 발굴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제 의견은 삼국이 한반도에는 있었다. 다만 고구려, 백제등은 대륙에도 그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면 어느정도 해석할수 있을듯 합니다.



17. 한단고기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반만년이 아닌 일만년이라고 주장하는 고문헌이다. 현재 학계에서 무시당하고 있지만, 박창범 교수에 의해 한단고기의 천체관측기록이 정확하다고 밝혀졌다.

===> 개인적으로 한단고기는 검토가 필요한 문헌이라고 생각됩니다. 천체관측기록등에 비추어 무시할수 없을 기록의 정확성도 있기때문입니다. 문제는 그만큼 위서로 판독될만한 기록도 같이 있다는게 문제입니다.

그 러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한가지 꼬투리를 가지고 이게 진서니 위서니 따지기보다는 그저 담담하게 연구해볼만한 문헌이라는 의견입니다. 거기에는 무시할수 없을만한 기록도 분명히 있으며 또 쓰레기같은 기록들도 같이 공존하니 연구를 통해 버릴것은 버리고 얻고 연구해볼만한 것은 연구해야지 몇가지를 트집잡아 위서다 아니다라고 할수 없다는게 제 입장입니다.

어차피 한단고기는 단 하나의 책이 아닌 옛 여럿 기록들을 하나로 모았다는 게 서문에 있습니다. 그중에서는 위서도 있을것이고 또 진서라고 하기에는 어렵지만 충분히 참고할만한 자료들도 역시 있을것입니다. 하나가 맞았다고 전체가 다 맞다고 우기거나 하나가 틀렸다고 전체가 틀렸다고 말하기보다는 하나하나 나누어 분석, 연구, 검토가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18. 백제의 인구가 고려나 조선초의 인구보다 많다.

===> 한단고기를 제외하고는 백제의 인구가 얼마라는 기록은 없습니다. 단지 구당서등에 76만호기록등이 보이나 백제 멸망의 당사자인 소정방의 당시 기록이나 신라가 말한 백제의 호구수는 훨씬 적은 20여만호에 불과할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하게 제일 많이 기록된 구당서등을 이유로 백제 인구가 고려나 조선초보다 많다고 할수가 없습니다.

하다못해 근대인 조선중기의 인구기록 조차 수십년 사이에 수백만명이 늘었다 줄었다 할정도로 엉터리인게 대부분입니다. 왕살의 잔치때 썼던 숫가락 갯수까지 기록하며 세계 역사상 전무한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같은 수백년의 기록마저 남긴 조선조차 인구 호구수 조차에서는 엉터리였습니다. 그런데 천수백년 백제 인구수가 단순하게 얼마다라고 말한다는게 오히려 우스울뿐입니다. 컴퓨터와 전산등의 호구 기록이 완전히 정비된 현재조차 인구조차는 하나하나 수를 헤어리는게 아니고 이만큼 인구가 늘었으니 인구조사동안 얼마가 죽고 얼마나 태어날꺼라는 수학적 계산을 통해 인구조사를 합니다. 그것도 각각 집을 개인 방문해서까지 조사하면서도요.

백제 인구가 고려나 조선초의 인구보다 많았다는 기록은 존재하지도 않지만 설사 그런방식으로 계산을 해도 믿을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19. 고구려 수도를 묘사한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의 평양으로는 턱없이 작다. 현 중국대륙의 장안(시안)과 소름끼치도록 일치한다.

===> 흔히 말하는 삼국은 한반도에 존재한적도 없고 대륙에 몽땅 있었다라는 사람들의 주장중 하나가 이것이지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유물문제때문에 이는 무참하게 깨어진 문제입니다. 아무리 그들이 한반도에 삼국이 없었다고 주장해도 한반도에서 삼국의 유물이 쏟아져 나오는데 어쩌겠습니까.... 더군다나 이 주장이 말하는 장안에서는 우리 삼국시대 유물은 전무하구요...

아무리 역사학이 유물이나 사료만으로 설명할수 없다고는 해도 기원전 수백년전 유물부터 삼국시대 백제, 고구려의 멸망시대 유물까지 천년의 시대의 흐름의 유물이 한반도에서 쏟아지는것을 부정할 수 있을까요? 일제가 날조하기 위해 낙랑 봉니같은 것이야 평양에 몇개 덜렁 가져다 놓을수는 있는거지만 적장 사람들이 생활했던 유물이 나오지 않아 날조가 이미 증명되었던 것처럼 천년의 세월이 쌓인 삼국의 유물을 무시하고 삼국이 한반도에 없었다라고 주장해도 그 주장의 허구성만 드러날뿐이지요.

그리고 고구려 수도를 묘사한 지금의 평양으로는 턱없이 작다라고 말씀하시지만.. 최근 북한의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고구려 평양성의 규모는 현재도 계속 외부로 확장중이랍니다. 즉, 지금껏 생각했던 고구려 수도의 크기가 점점 커지고 있는것이 최근 고고학적 발굴로 증명되고 있지요. 발굴이 완전히 끝나봐야 알겠지만 예상되는 고구려 수도의 크기는 오히려 중국 당나라의 수도 못지않은 규모일것이라는 것이 최근의 학설입니다. 도대체 지금 당장 드러나지 않았다고 평양이 고구려 수도로는 작다느니 장안과 소름끼치게 일치한다느니 하는 주장이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제발 소름이 끼쳐보게 그 장안과 소름끼치도록 일치한다는 자료 좀 봤으면 좋겠습니다. 전 아무리 봐도 그런 소름끼치는 장면이 없더구만...

일제의 역사왜곡도 왜곡이지만 이렇게 줄기차게 역사적 유물과 사료를 깡그리 무시한채 아무런 근거없이 대륙삼국설을 주장하는 자들도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20. 당 13만 군에 의해 백제 수도가 함락된 후에도 백제 장군 흑치상지는 200여개의 성을 기반으로 당에게 저항해 당은 40만군을 증원한다. 만약 백제가 한반도에 있었다면 한반도 전체가 성으로 뒤덮여 있어야 한다.

===> 이 문제는 성의 형태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됩니다. 이분들은 한반도내에서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돌로 지어진 성을 찾기때문에 한반도내에 그만한 성이 없다고 우깁니다.

당 시 동아시아에서 제일 발달된 축성기술을 가진 것은 바로 고구려였습니다. 고구려는 '성의 나라'라고 할만한 무수한 성이 존재했는데 특히나 석성을 상당수 가진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당시 고구려 지형의 상당수가 초원이 벌판에 존재했기 때문에 그런면도 있습니다. 석성이 아니더라도 고구려는 산을 기준으로 성을 쌓은 산성과 토성등이 존재했었습니다. 다만 이런 성들은 천수백년이 지나면서 많이 회손되었거나 자연지형같이 변해버렸기 때문에 잘 모를뿐입니다.

하지만 당시 동아시아 대부분의 국가의 성은 바로 판축기법등으로 이루어진 '토성'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당시 동아시아에서 제일 번성하고 세계 4대도시로 꼽히던 당나라의 수도 마저도 흙을 쌓아 만든 토성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중국의 만리장성도 벽돌이나 돌로 지어진 번득한 모습이지만 실상 이는 대부분 명나라나 청나라시대 만든것이고 진시황제 시절에 지어진 만리장성은 토성이었습니다. 이는 진을 계승한 한나라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도 발견되는 삼국시대 성은 대부분이 토성중심이지 석성 중심이 아닙니다. 현재 남아있는 삼국시대 성인데도 석성으로 이루어진 것은 대부분 고려와 조선조 시기 석성으로 변경된 것들입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토성은 무너지고 또는 자연에 파묻혀 산의 일부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성의 흔적을 찾을수 없을뿐 단지 성이 없다고 저 기록이 틀렸다고 말할수가 없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백제 무왕, 의자왕시절에는 백제가 신라에 적극적인 공세를 취해 100여개 성을 빼앗습니다. 이만해도 흑치상지가 저항했다는 200여성의 절반에 달할정도입니다. 이 대부분이 산성이나 토성일 것입니다.

근대에 들어 쌓기 시작한 석성을 중심으로 200여 성을 찾으니 보이지 않을뿐입니다.



21. 조선 초 인구가 37만명인데, 1000년전의 국가인 백제나 고구려의 군인만 100만이었다.

===> 이는 위에서 100만 군의 허구성에 대해서 말했기때문에 줄입니다. 또한 조선 초 인구의 37만명은 대부분 양반을 중심으로 한 남자들만을 조사했을뿐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노비나 양인, 아녀자와 고려시대 수많았던 승려들을 모조리 제외한 결과일 뿐입니다. 이것보다는 훨씬 많습니다..


22. 현재의 요동 요서 개념과 과거의 요동 요서 개념은 완전히 틀린다. 요동이 고구려 영토라 함은 현재의 요동반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 중국 대륙 내륙의 요동을 이야기한다.

===> 이는 중국 사학자들과 우리나라, 북한 사학자들간의 현재도 논쟁의 대상입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우리 사학자들 의견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요동, 요서 개념이 확정된 것은 거란족인 요나라가 그 지역에 등장한 이후입니다. 그 이전인 삼국시대의 요동, 요서와 현재 말하는 요동, 요서와 같을 수가 없습니다.


23. 18~19c 외국인 선교사 또는 탐험가들이 작성한 지도에는 조선이 만주는 물론 중국대륙의 일부까지 지배하고 있다.

===> 도대체 이런 뻥을 누가 쳐대는지 모르겠네요. 그런 지도가 있다면 제발 공개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중국애들 동북공정 한방 먹이게.... 이런 지도는 발견된적도 작성된 적도 없습니다.

다 만 교황청의 조선교구를 나눈 지도에 간도지역이 표기된 소시에때 데미시용 에트랑제트가 발행한 '까똘리시즘 앙꼬레'에 게재되었던 지도가 유일합니다. 저도 간도가 조선의 영토였다고 당연히 생각합니다만... 아쉽게도 이 자료마저도 당시 남하하는 러시아의 영향력을 일부러 엿먹이기 위해 프랑스가 제작했다는게 최근 정설입니다. 이 시대만 해도 이미 러시아와 청이 이 지역의 영향력을 다투고 있었고 조선은 분명히 자국 영토였음에도 별로 관심도 없고 아무런 의견도 제시하지 않았던 때이죠. 정말 열받는다는...휴...



24. 현 중국대륙의 강소성 숙천 과 산동성 즉묵시의 향토사학자들이나 향토지에 따르면 연개소문이 이 곳들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 이는 그야말로 야사일뿐입니다. 물론 어느정도 사실을 바탕으로 했기때문에 이런 주장이 나오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아직 국내학계는 별 관심을 두지않고 있습니다.


25. 현 중국대륙의 강소성 숙천 근처에는 성터가 있는데, 이 곳 주민들은 고려성이라고 부른다.

===> 고려성터 존재합니다. 아마도 이곳이 광개토대왕시절 영향력을 미쳤던 지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언제까지 이곳을 영유했는지는 알수가 없지만 상당수 기간동안 이 지역을 고구려가 지배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26. 현 중국 대륙의 베이징 근처에는 고려영진이라는 지명이있다.

===> 고구려가 북경근처까지 진출했던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니까 이건 패스...


27. 고구려 고씨가 아직도 중국 대륙에 살고있다. 특히 장수왕 후손인 사람은 고구려 유리왕의 묘가 베이징 근처에 있다고 주장했으며 실제로 베이징 근처에 유리왕묘가 있다. 중국에서는 제후국 유리국의 왕의 묘라고 주장하고 있다.

===> 고구려왕족인 고씨 물론 존재합니다. 고구려 멸망시 왕인 보장왕을 비롯한 고구려 귀족층 수십만명이 당으로 끌려갔으니 고구려 왕의 후예가 있을수밖에 없습니다.

그 러나 장수왕 후손인 사람이 유리왕 묘가 베이징 근처에 있다고 주장했다는 것에는 의문을 표할수밖에 없습니다. 예전 다큐멘터리로 이들을 찾아간 적이 있는데 10여년 전만해도 자신들이 고구려의 후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으며 다들 한족인줄 알고 있었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말하는 것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갑자기 몇년전부터 자신들이 장수왕의 후예이니, 유리왕의 무덤이 있다거니 하는 진의가 의심스러울수밖에요. 오히려 중국이 주장하는 동북공정에 이용되기 위해 그들이 그런 주장을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너희가 말하는 고구려 왕의 무덤이 이곳에 있다. 고구려 왕이 무덤이 왜 이곳에 있겠느냐? 당연히 고구려는 중국의 일개 지방정권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런거다 이런 늬앙스가 중국 정부 관계자 인터뷰에 묻어나더군요.


28. 중국대륙에 있는 수많은 성들이 현지인들에게 예로부터 지금까지도 고려성, 또는 고구려성이라고 불리고 있다.

===> 수많은 성이라니요..휴 천수백년간의 역사기록을 다 들추어봐도 만주를 제외하고는 하북성 부군의 수십개 성에 불과합니다. 아무래도 이곳까지 고구려가 진출했다는 증거는 될수 있을지언정 그때문에 고구려가 중국 대륙 내부에 있었다는 증거는 되지않습니다.

하북성 주변을 제외한 고려성이나 고구려성이 중국 내륙 어디에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29. 백제의 의자왕, 흑치상지에 관련된 지명들이 중국대륙에만 존재한다.

===> 어떤 지명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중국에 의자나 흑치라는 지명이 있나보지요? 하나 의자라는 지명이 의자왕을 말한다고 말할수 없습니다. 패망한 왕국의 마지막 왕의 지명을 따서 부른다고 하는것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전성기를 이끈 나라라 백제라는 이름이라면 또 몰라도...

또 흑치에 관련된 지명은 베트남등의 동남아시아쪽에도 존재합니다. 베트남의 일부 부족중 어떤 이들이 이를 까맣게 하기 때문이지요.


30. 백제가 패망할 당시 지명이 한반도에는 없다. 그러나 중국대륙에는 모두 있다.

===> 대단합니다. 이 글을 작성한 분이 어떤분인지 지금도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는 백제의 지명들을 다 알고 계신 분인가봐요. 그 지명들을 다 나열해주셨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중국대륙에 일부가 있다면 몰라도 "모두" 있다라...허허허... 말할 가지조차 없네요.

그리고 지명의 일부는 비슷한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룡곡' 이라는 지명이 우리나라나 일본, 중국등에 여러곳이 있는데 이곳이 모두 한곳을 가르키는 지명이 아닙니다. 처음 이름을 지으신 분이 대충구불구불하고 구름 자주 끼고 골짜기이면 비슷한 생각을 가지니 지명도 비슷해지지요.

그리고 백제 멸망후 지명은 대부분 신라식으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고려때도 바뀌었구요. 조선으로 바뀌며 상당수가 변했고 일제때 대변혁을 또 한번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