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삼국사기에 나오는 지명중 김부식이 모른다고 한 지명이 359개나 된다. 이들 모두가 중국대륙에는 존재한다.
===> 이 근거 자료를 좀 보고싶네요. 한 360여개도 아니고 김부식이 일일이 세어서 359개라 정확히 맞추었다니..허허..
32. 한단고기외에 한민족 일만년 역사를 주장하는 '규원사화'는 위서라고 알려져왔다. 그러나 규원사화 진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있다.
===> 일반화의 오류 아닌가요? 한단고기를 증명하기 위해 규원사화가 위서라고 혼자서 전제하고 원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있으니 규원사화는 위서가 아니고 한단고기도 위서가 아니라고 우기는....
위에도 말했듯이 한단고기는 하나의 사서가 아니고 여러 사서를 하나로 묶은 겁니다. 규원사화 하나가 위서가 아니라고 한단고기의 다른 기록들이 위서가 아니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른 원본들이 모두 발견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33. 중국의 고문헌에 나와있는 발음법으로 정확하게 한자를 읽는 민족은 우리민족밖에 없다.
===> 중국의 고문헌에 나오는 발음법이라는게 정확히 뭔가요? 또..그 고문헌은? 그러니까 우리가 말하는 한자 발음법이 맞고 대만이나 중국대륙에서 말하는 본토 중국인들의 한자 발음법이 틀렸다는 건가요? 실소를 금할수가 없는....
이는 마치 콩글리쉬 발음이 정답이고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인이나 영국인들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군요.
34. 신라 수도에 있다는 토함산의 이름은 화산이라는 뜻이다. 또한 삼국유사, 삼국사기등에도 토함산의 화산활동이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현 경주의 토함산은 공교롭게도 화산이 아니다.
===> 신라 수도에 있다는 토함산의 화산 활동기록은 알수없군요. 하지만 경주에서 기원전부터 유물이 나오고 또 신라 수도인 서라벌에 있다는 유물이 나오고 있군요.
35. 한국 국사에서는 고조선이 망한 후 漢나라에서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중국의 문헌에서는 한사군을 설치하려다가 고구려 동명왕에게 참패해서 漢군의 수장들이 모두 육시(몸을 6등분하는 참형) 당했다고 기록되어있다.
===> 중국 문헌 어디에 동명성왕에게 한나라 수장들이 패했다는 기록이 있나요? 설사 사마천의 사기에 있는 한나라 수장들을 한무제가 육시했다는 것을 가지고 우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이는 이미 우리나라 사학계에서도 주장하는 있는 한사군의 허구나 또는 한사군이 설치되었더라도 요서지역 일부 지역에 설치하려다 ㅤㅉㅗㅈ겨갔다는 것으로 정설이 된게 아닌가요?
도대체 동명성왕이 한나라군을 패배시켰다는 구절이 고금의 역사기록 어디에 나오나요?
36. 청나라 황제들의 성씨인 애신각라 는 신라를 잊지않고 사랑하겠다는 뜻이다.
===> 이 주장의 근거는? 단지 애신각라라는 한문을 풀이해서? 그럼 김대중은? 마이클은? 고이즈미는 왜 고미즈미이지? 토요토미는 왜 토요토미인거지? 우스운 소리일뿐이다.
사 료를 해석하며 무조건 한자로 해석하는 덕분인지 이제는 단순하게 한자로 표기했을뿐인 성씨까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렇게 따지면 가구가락(可口可乐)라고 쓰는 코카콜라의 뜻도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단순하게 소리를 표기한 저런 것마저 한자로 하나하내 해석해야 한다는 말인가?
애신각라는 그저 단순한 만주어로 금나라황족의 성씨를 말하는 것뿐이다. 물론 그 이전에는 완안씨였지만 세월이 흐르며 성씨가 애신각라라고 변했을 뿐인 것이다.
신 라? 망한지 수백년이 되어가는 신라가 뭐가 그리워서 잊지않고 사랑한다고 애신각라라고 할까... 그렇다면 그전에 금나라를 건설했던 완안씨는 왜 성씨를 애신각라라고 안하고 완안이라고 했을까? 코카콜라를 가구가락(可口可)이라고 표기했다고 해서 그게 코카콜라를 자기네 표기법으로 쓴게 아니고 입에서 허락하고 입이 즐거운이라는 뜻풀이를 해야만 하는가?
금나라 시조가 신라사람 김함보이고 그가 금나라의 시조가 되었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신라를 잊지않고자 했으면 금이 아닌 신라라고 나라를 짓거나 성을 신라로 짓지 왜 완안이라고 하였을까? 결론? 아무 뜻이 없다는 거다. 그저 완안이라고 하고 애신각라라고 하였을뿐이다. 자기가 금나라 왕족인것도 모르던 자가 어느날 문득 깨닫고 그저 성을 바꾸어 애신각라라고(이것도 만주어를 한자로 쓴거니 발음은 또 우리가 아는것과 틀릴꺼다.) 한것을 신라를 잊지않고 사랑하겠다라...
그렇게 신라를 잊지않고 사랑해서 청나라가 조선 서라벌에 무슨 혜택이라도 베풀어줬나? 이야말로 결과를 놓고 아전인수로 해석할 뿐이것이다.
37. 애신각라를 몽골어로 읽으면 아이신 지료 라고 발음된다. 아이신은 금(金)을, 지료는 겨레(族)를 의미한다. 신라의 왕족은 금(金)씨이다. 청나라의 원래 이름은 금(金)나라 이다.
===> 이번에는 위 글을 쓴 사람이 완전히 다른 소리를 한다. 신라를 잊지않고 사랑한다더니 이제는 몽골어로 그저 금나라 겨레를 말하는 것이란다..휴
맞 다..금나라 겨레... 당연한거 아닌가? 자신이 금나라 왕족의 후예인것을 모르던 자가 우연히 자신이 금나라왕족의 후예인것을 알았다. 그래서 난 금나라의 후손이다라고 한것이 바로 만주어로 금족이라는 아이신카라... 단지 그걸 한자로 발음에 맞게 표기한게 애신각라일뿐이다. 그뿐이다. 거기에 무슨 신라가 끼어들 건덕지 따위는 없다.
청나라가 후금이라고 한것은 금나라의 후예를 자처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왜 신라 왕족이 금씨다라는게 들어가나? 이해불능이다.
38. 임진왜란 때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가 조선 선조에게 '부모님의 나라를 침략한 쥐 같은 왜구들을 해치우겠다'는 요지의 편지를 썼다.
===> 이 글을 쓴 사람이 점점 역사가 무지하다는게 드러나고 있다. 누르하치가 조선 선조에게 부모님의 나라라고 한것은 신라의 후예인 조선이기때문에 부모님의 나라라고 한게 아니라 당시 여진족에게 조선은 부모의 나라임을 강요했다. 이는 조선이전 고려때에도 마찬가지이다.(심지어 금나라를 건국한 아골타에게도 고려는 부모의 나라임을 강요했다. 물론 금이 강성해지며 뒤집혀버렸지만..) 이는 마치 조선이 명을 보며 부모의 나라라고 불렀던 것과 같은 흔한 외교적 수사일뿐이다.
더군다나 당시 누르하치가 조선에게 왜구들을 해치우겠다라고 말한것은 조선의 힘을 염탐해보기 위해서였던것 것이지 무슨 조선이 신라를 이었기 때문이 아닌것이다.
원 래 당시 만주의 지배자는 이성량으로 바로 조선계인 성주이씨 가문의 사람이었다.(이 자가 바로 조선의 원군으로 왔던 이여송의 아비이다.) 이성량은 만주를 지배하며 여진과 조선의 중계무역을 조정하며 힘있는 여진족장이 나타나면 서로 분열시켜 여진족의 통합을 막는등 명 중앙 조정에까지 막강한 힘을 뻗치던 만주일대의 제왕이었다. 이자가 버티고 있을때는 천하의 누르하치마저도 공손히 그의 힘앞에 머리를 조아릴 정도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암살인지 급살인지 알수없게 갑작스럽게 이성량이 사망하자 누르하치는 재빠르게 부족을 통합하고 이성량이 키워놓은 세력을 흡수하기 시작한다. 이 세력은 한족과 여진, 조선인의 통합체같은 조직이었는데 이 세력을 흡수하며 누르하치의 후금은 그후 청나라가 될때 이들의 도움을 받아 한족을 통치할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성량의 세력을 이어받을 아들들이 모두 중앙인 북경에 진출해 있었다는 것이다.
그전부터 누르하치의 야심을 간파하고 이성량으로 하여금 누르하치를 제거할 명분을 찾기 바빠던 명은 갑작스런 이성량의 죽음으로 만주일대의 세력을 잃어버릴 것을 두려워해 혼란해 빠지고 더군다나 이성량의 아들들은 서로 자기가 아비의 후계자임을 자처하며 북경에서 세력 다툼을 하는 사이 누르하치가 이성량의 세력을 모두 흡수하고 만주일대의 지배권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누르하치는 명의 군벌로서 존재할것만 생각했지 독립을 생각한것은 아니었는데 만주일대의 세력권을 손에넣은 누르하치가 명 조정에 신하로서 충실하며 대신 만주지역의 자신의 세력을 인정해 명의 관직을 요구했지만 명 조정이 거부하자 후금을 건국하게 되는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이 왜에 침공을 당하자 그동안 상국으로 명과 조선을 모두 섬겨왔던 여진족의 수장인 그러서는 조선의 힘이 어느정도 되는지 확인을 해봐야 겠고..이런 이유로 부모의 나라를 침범한 왜구를 몰아내겠다라는 핑계를 대고 조선에 들어오려고 했던것입니다.
39. 금나라 역사서인 금사 를 보면 금 태조는 고려에서 왔다고 기록되어있다.
===> 신라후예 김함보의 후예이니 이건 사실이죠.
40. 청나라 황실 역사서인 만주원류고에는 금 태조가 나라 이름을 신라의 왕의 성씨에서 따왔다고 기록되어있다.
===> 이런 원문을 보여주시죠...
41. 송나라때의 역사서 송막기문에는 금나라 건국직전에 여진족이 부족국가 형태일때의 추장이 신라인이라고 기록되어있다.
===> 김함보의 후손이니 신라계였을지는 모르지만 신라인은 아니죠. 정확힌 말하면 고려인이지...
42. 현재 우리나라 부안 김씨의 족보에 금 태조의 이름이 나와있다.
===> 아까도 말했다시피 김씨 후손이다보니..김씨 후손이면 족보에 있겠죠. 다만 금나라 태조가 신라계라고해서 애신각라가 신라를 잊지않고 사랑하겠다는 소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43. 백제 온조왕 13년 (BC 6), 5월에 왕이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나라의 동편에는 낙랑이 있고, 북에는 말갈이 있어, 영토를 침노하여 오므로 편안한 날이 적다."고 하였다. 지금 국사에서 배우는 상식으로는 백제 북쪽은 고구려로 막혀 있어야한다.
===> 이때 백제 북쪽은 낙랑국이 맞음.(한사군의 낙랑군이 아님) 낙랑국이 망한것은 313년 고구려 대무신왕때로 이때만 해도 고구려는 만주벌판의 아직 약한 소국이었고 온조왕 13년이면 낙랑국이 아직 강성할때임. 백제 북쪽이 고구려로 막히려면 아직 319년은 더 있어야..
44. 1976년 평남 대안시 덕흥리의 무학산 밑에서 발굴된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유주자사 진에게 보고하는
13 명의 태수의 그림이 그려져있는데, 그 뒤에 관명이 새겨져 있다. 그 이름은 다음과 같다. 연군태수(하북성 보정부 서쪽의 완현부근), 광령태수(하북성 탁현의 군치), 상곡태수(보정부, 하문부 및 순천부 서남경계), 어양태수(하북성 밀운형 동쪽), 범양태수(북경의 서쪽), 대군태수(산서성 대동현 동쪽), 북평태수(북경지방), 낙랑태수(북경 동쪽의 하북성), 창려태수(산해관 남쪽), 요동태수(하북성 영정하 동쪽), 요서태수(하북성 영정하 서쪽), 현도태수(하북성 북경 서남쪽), 대방태수(창려,금주일대)이다. 유주는 북경일대를 말한다.
===> 고구려가 북경 근처까지 세력을 뻗쳤다는 것은 우리 국민이라면 다 알고 있는데 마치 혼자만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 이분은...에구..
45. 중국의 역사서인 남제서에는 북위가 백제를 치려고 수십만의 기병을 파견했다가 패배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우리가 국사교과서에서 배운대로라면 북위에서 백제를 치려면 바다를 건너야한다. 기병은 바다를 건널 수 없다.
===> 이 부분도 우리가 배운대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국사교과서에는 분명히 백제가 요서나 진평군등 대륙 일부를 지배했음을 서술하고 있다. 역시 이부분도 남들 다 아는걸 몰랐지?라고 하는 듯한 이 늬앙스는...난감...
===> 이 근거 자료를 좀 보고싶네요. 한 360여개도 아니고 김부식이 일일이 세어서 359개라 정확히 맞추었다니..허허..
32. 한단고기외에 한민족 일만년 역사를 주장하는 '규원사화'는 위서라고 알려져왔다. 그러나 규원사화 진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있다.
===> 일반화의 오류 아닌가요? 한단고기를 증명하기 위해 규원사화가 위서라고 혼자서 전제하고 원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있으니 규원사화는 위서가 아니고 한단고기도 위서가 아니라고 우기는....
위에도 말했듯이 한단고기는 하나의 사서가 아니고 여러 사서를 하나로 묶은 겁니다. 규원사화 하나가 위서가 아니라고 한단고기의 다른 기록들이 위서가 아니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른 원본들이 모두 발견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33. 중국의 고문헌에 나와있는 발음법으로 정확하게 한자를 읽는 민족은 우리민족밖에 없다.
===> 중국의 고문헌에 나오는 발음법이라는게 정확히 뭔가요? 또..그 고문헌은? 그러니까 우리가 말하는 한자 발음법이 맞고 대만이나 중국대륙에서 말하는 본토 중국인들의 한자 발음법이 틀렸다는 건가요? 실소를 금할수가 없는....
이는 마치 콩글리쉬 발음이 정답이고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인이나 영국인들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군요.
34. 신라 수도에 있다는 토함산의 이름은 화산이라는 뜻이다. 또한 삼국유사, 삼국사기등에도 토함산의 화산활동이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현 경주의 토함산은 공교롭게도 화산이 아니다.
===> 신라 수도에 있다는 토함산의 화산 활동기록은 알수없군요. 하지만 경주에서 기원전부터 유물이 나오고 또 신라 수도인 서라벌에 있다는 유물이 나오고 있군요.
35. 한국 국사에서는 고조선이 망한 후 漢나라에서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중국의 문헌에서는 한사군을 설치하려다가 고구려 동명왕에게 참패해서 漢군의 수장들이 모두 육시(몸을 6등분하는 참형) 당했다고 기록되어있다.
===> 중국 문헌 어디에 동명성왕에게 한나라 수장들이 패했다는 기록이 있나요? 설사 사마천의 사기에 있는 한나라 수장들을 한무제가 육시했다는 것을 가지고 우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이는 이미 우리나라 사학계에서도 주장하는 있는 한사군의 허구나 또는 한사군이 설치되었더라도 요서지역 일부 지역에 설치하려다 ㅤㅉㅗㅈ겨갔다는 것으로 정설이 된게 아닌가요?
도대체 동명성왕이 한나라군을 패배시켰다는 구절이 고금의 역사기록 어디에 나오나요?
36. 청나라 황제들의 성씨인 애신각라 는 신라를 잊지않고 사랑하겠다는 뜻이다.
===> 이 주장의 근거는? 단지 애신각라라는 한문을 풀이해서? 그럼 김대중은? 마이클은? 고이즈미는 왜 고미즈미이지? 토요토미는 왜 토요토미인거지? 우스운 소리일뿐이다.
사 료를 해석하며 무조건 한자로 해석하는 덕분인지 이제는 단순하게 한자로 표기했을뿐인 성씨까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렇게 따지면 가구가락(可口可乐)라고 쓰는 코카콜라의 뜻도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단순하게 소리를 표기한 저런 것마저 한자로 하나하내 해석해야 한다는 말인가?
애신각라는 그저 단순한 만주어로 금나라황족의 성씨를 말하는 것뿐이다. 물론 그 이전에는 완안씨였지만 세월이 흐르며 성씨가 애신각라라고 변했을 뿐인 것이다.
신 라? 망한지 수백년이 되어가는 신라가 뭐가 그리워서 잊지않고 사랑한다고 애신각라라고 할까... 그렇다면 그전에 금나라를 건설했던 완안씨는 왜 성씨를 애신각라라고 안하고 완안이라고 했을까? 코카콜라를 가구가락(可口可)이라고 표기했다고 해서 그게 코카콜라를 자기네 표기법으로 쓴게 아니고 입에서 허락하고 입이 즐거운이라는 뜻풀이를 해야만 하는가?
금나라 시조가 신라사람 김함보이고 그가 금나라의 시조가 되었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신라를 잊지않고자 했으면 금이 아닌 신라라고 나라를 짓거나 성을 신라로 짓지 왜 완안이라고 하였을까? 결론? 아무 뜻이 없다는 거다. 그저 완안이라고 하고 애신각라라고 하였을뿐이다. 자기가 금나라 왕족인것도 모르던 자가 어느날 문득 깨닫고 그저 성을 바꾸어 애신각라라고(이것도 만주어를 한자로 쓴거니 발음은 또 우리가 아는것과 틀릴꺼다.) 한것을 신라를 잊지않고 사랑하겠다라...
그렇게 신라를 잊지않고 사랑해서 청나라가 조선 서라벌에 무슨 혜택이라도 베풀어줬나? 이야말로 결과를 놓고 아전인수로 해석할 뿐이것이다.
37. 애신각라를 몽골어로 읽으면 아이신 지료 라고 발음된다. 아이신은 금(金)을, 지료는 겨레(族)를 의미한다. 신라의 왕족은 금(金)씨이다. 청나라의 원래 이름은 금(金)나라 이다.
===> 이번에는 위 글을 쓴 사람이 완전히 다른 소리를 한다. 신라를 잊지않고 사랑한다더니 이제는 몽골어로 그저 금나라 겨레를 말하는 것이란다..휴
맞 다..금나라 겨레... 당연한거 아닌가? 자신이 금나라 왕족의 후예인것을 모르던 자가 우연히 자신이 금나라왕족의 후예인것을 알았다. 그래서 난 금나라의 후손이다라고 한것이 바로 만주어로 금족이라는 아이신카라... 단지 그걸 한자로 발음에 맞게 표기한게 애신각라일뿐이다. 그뿐이다. 거기에 무슨 신라가 끼어들 건덕지 따위는 없다.
청나라가 후금이라고 한것은 금나라의 후예를 자처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왜 신라 왕족이 금씨다라는게 들어가나? 이해불능이다.
38. 임진왜란 때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가 조선 선조에게 '부모님의 나라를 침략한 쥐 같은 왜구들을 해치우겠다'는 요지의 편지를 썼다.
===> 이 글을 쓴 사람이 점점 역사가 무지하다는게 드러나고 있다. 누르하치가 조선 선조에게 부모님의 나라라고 한것은 신라의 후예인 조선이기때문에 부모님의 나라라고 한게 아니라 당시 여진족에게 조선은 부모의 나라임을 강요했다. 이는 조선이전 고려때에도 마찬가지이다.(심지어 금나라를 건국한 아골타에게도 고려는 부모의 나라임을 강요했다. 물론 금이 강성해지며 뒤집혀버렸지만..) 이는 마치 조선이 명을 보며 부모의 나라라고 불렀던 것과 같은 흔한 외교적 수사일뿐이다.
더군다나 당시 누르하치가 조선에게 왜구들을 해치우겠다라고 말한것은 조선의 힘을 염탐해보기 위해서였던것 것이지 무슨 조선이 신라를 이었기 때문이 아닌것이다.
원 래 당시 만주의 지배자는 이성량으로 바로 조선계인 성주이씨 가문의 사람이었다.(이 자가 바로 조선의 원군으로 왔던 이여송의 아비이다.) 이성량은 만주를 지배하며 여진과 조선의 중계무역을 조정하며 힘있는 여진족장이 나타나면 서로 분열시켜 여진족의 통합을 막는등 명 중앙 조정에까지 막강한 힘을 뻗치던 만주일대의 제왕이었다. 이자가 버티고 있을때는 천하의 누르하치마저도 공손히 그의 힘앞에 머리를 조아릴 정도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암살인지 급살인지 알수없게 갑작스럽게 이성량이 사망하자 누르하치는 재빠르게 부족을 통합하고 이성량이 키워놓은 세력을 흡수하기 시작한다. 이 세력은 한족과 여진, 조선인의 통합체같은 조직이었는데 이 세력을 흡수하며 누르하치의 후금은 그후 청나라가 될때 이들의 도움을 받아 한족을 통치할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성량의 세력을 이어받을 아들들이 모두 중앙인 북경에 진출해 있었다는 것이다.
그전부터 누르하치의 야심을 간파하고 이성량으로 하여금 누르하치를 제거할 명분을 찾기 바빠던 명은 갑작스런 이성량의 죽음으로 만주일대의 세력을 잃어버릴 것을 두려워해 혼란해 빠지고 더군다나 이성량의 아들들은 서로 자기가 아비의 후계자임을 자처하며 북경에서 세력 다툼을 하는 사이 누르하치가 이성량의 세력을 모두 흡수하고 만주일대의 지배권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누르하치는 명의 군벌로서 존재할것만 생각했지 독립을 생각한것은 아니었는데 만주일대의 세력권을 손에넣은 누르하치가 명 조정에 신하로서 충실하며 대신 만주지역의 자신의 세력을 인정해 명의 관직을 요구했지만 명 조정이 거부하자 후금을 건국하게 되는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이 왜에 침공을 당하자 그동안 상국으로 명과 조선을 모두 섬겨왔던 여진족의 수장인 그러서는 조선의 힘이 어느정도 되는지 확인을 해봐야 겠고..이런 이유로 부모의 나라를 침범한 왜구를 몰아내겠다라는 핑계를 대고 조선에 들어오려고 했던것입니다.
39. 금나라 역사서인 금사 를 보면 금 태조는 고려에서 왔다고 기록되어있다.
===> 신라후예 김함보의 후예이니 이건 사실이죠.
40. 청나라 황실 역사서인 만주원류고에는 금 태조가 나라 이름을 신라의 왕의 성씨에서 따왔다고 기록되어있다.
===> 이런 원문을 보여주시죠...
41. 송나라때의 역사서 송막기문에는 금나라 건국직전에 여진족이 부족국가 형태일때의 추장이 신라인이라고 기록되어있다.
===> 김함보의 후손이니 신라계였을지는 모르지만 신라인은 아니죠. 정확힌 말하면 고려인이지...
42. 현재 우리나라 부안 김씨의 족보에 금 태조의 이름이 나와있다.
===> 아까도 말했다시피 김씨 후손이다보니..김씨 후손이면 족보에 있겠죠. 다만 금나라 태조가 신라계라고해서 애신각라가 신라를 잊지않고 사랑하겠다는 소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43. 백제 온조왕 13년 (BC 6), 5월에 왕이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나라의 동편에는 낙랑이 있고, 북에는 말갈이 있어, 영토를 침노하여 오므로 편안한 날이 적다."고 하였다. 지금 국사에서 배우는 상식으로는 백제 북쪽은 고구려로 막혀 있어야한다.
===> 이때 백제 북쪽은 낙랑국이 맞음.(한사군의 낙랑군이 아님) 낙랑국이 망한것은 313년 고구려 대무신왕때로 이때만 해도 고구려는 만주벌판의 아직 약한 소국이었고 온조왕 13년이면 낙랑국이 아직 강성할때임. 백제 북쪽이 고구려로 막히려면 아직 319년은 더 있어야..
44. 1976년 평남 대안시 덕흥리의 무학산 밑에서 발굴된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유주자사 진에게 보고하는
13 명의 태수의 그림이 그려져있는데, 그 뒤에 관명이 새겨져 있다. 그 이름은 다음과 같다. 연군태수(하북성 보정부 서쪽의 완현부근), 광령태수(하북성 탁현의 군치), 상곡태수(보정부, 하문부 및 순천부 서남경계), 어양태수(하북성 밀운형 동쪽), 범양태수(북경의 서쪽), 대군태수(산서성 대동현 동쪽), 북평태수(북경지방), 낙랑태수(북경 동쪽의 하북성), 창려태수(산해관 남쪽), 요동태수(하북성 영정하 동쪽), 요서태수(하북성 영정하 서쪽), 현도태수(하북성 북경 서남쪽), 대방태수(창려,금주일대)이다. 유주는 북경일대를 말한다.
===> 고구려가 북경 근처까지 세력을 뻗쳤다는 것은 우리 국민이라면 다 알고 있는데 마치 혼자만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 이분은...에구..
45. 중국의 역사서인 남제서에는 북위가 백제를 치려고 수십만의 기병을 파견했다가 패배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우리가 국사교과서에서 배운대로라면 북위에서 백제를 치려면 바다를 건너야한다. 기병은 바다를 건널 수 없다.
===> 이 부분도 우리가 배운대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국사교과서에는 분명히 백제가 요서나 진평군등 대륙 일부를 지배했음을 서술하고 있다. 역시 이부분도 남들 다 아는걸 몰랐지?라고 하는 듯한 이 늬앙스는...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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