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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긁적이기

'아벨서점'을 가다...

by 시간의지배자 2007. 10. 19.
2005년 9월 15일날 이글루스 블로그에 쓴 글입니다. 당시 고등학교 졸업하고 십수년만에 예전 자주가던 아벨서점을 다시 찾아가게 되었지요. 아직도 그 자리에 굳건합니다만 이제는 언제 사라질지도 모를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벨서점 근처를 대형도로가 들어서며 사라질 위기가 되고 있거든요.

지명에서 묻어나오듯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배로 만든 다리도 이제는 사라져 평평한 그저그런 골목이 되었듯이 한때 청계천에 이어 전국에서 2번째로 컸다던 인천배다리 헌책방 골목도 모조리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습니다.(지금도 몇곳 안남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추억을 먹고 산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은듯... 진한 아쉬움이 남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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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동인천 중구에 가면 배다리라는 곳이 있다. 이곳이 유명했던 것은 한때 이곳이 국내에서 청계천에 이어 그 규모에서 두번째로 큰 헌책방이 밀집되어 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저께 밤 웹서핑을 하던중 문득 헌책방에 대한 글을 보게되었고 그 글중에서 '아벨서점'에 대한 글이 보였다. '아벨서점'... 학창시절때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 참고서와 책을 싸게 사기위해 들렀던 곳이다. 야릇한 향수와 함께 쇠락했다는 배다리 헌책방에서 아직도 이곳이 생존하고 있다는 신기함이 겹쳐져 가보고 싶었다. 마침 어제가 아내가 쉬는 날이기도 해 같이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어제는 늦잠을 자서 늦게 일어났고 또 아내에게 아침겸 점심같은 아침을 먹고나서야 이야기를 할수 있었다. 아내는 흔쾌히 동의했다. 어차피 도서관에 가려고 했었다면서...^^

전철을 타고 동인천역에서 내려 배다리까지 걸어가는 7~8분이 왜 이리 멀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8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자주 가던 이 헌책방 거리를 가까이 있으면서도 왜 찾지않았을까? 동인천은 자주 왔으면서도 이곳은 그후 멀리했던 내가 의아하게 느껴졌다. 난 인천 주안에 산다. 멀지도 않다. 집근처가 간석역이니 몇정거장만 가면 바로 이곳이다. 그럼에도 이곳을 마지막으로 찾았던것이 10년이 가깝게 된것 같다. 한때 빈약한 용돈의 90%에 가까운 돈을 책을 사기 위해 썼고 싼 책을 사기위해 이곳을 줄기차게 다니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그럼에도 왜 그 이후에는 이곳을 찾지않았을까? 책을 멀리하면서 그외 다른 무언가를 찾고자 했던 것일까?

도착한 '아벨서점'의 문은 예전과 같이 열려있었다. 그 흐릿하고 지금은 낡은 시골 어느 구멍가게나 볼듯해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면 지나쳐 버릴 듯 한 그 간판은 무언가 퇴색함과 함께 야릇한 추억을 일으켰다. 한눈에 보기에도 거리는 한산하고 쓸쓸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예전 20년전 즈음에도 예전에 비해 이곳이 많이 퇴색되었다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었는데 지금은 더욱 더 그러하다.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이곳을 잊고 지냈듯 많은 사람들이 또한 그렇게 잊고 지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럼에도 인적없는 거리와 헌책방을 더이상 팔지않는다는 듯이 헌책과 신책을 함께 판매하는 서점들로 바뀐 거리가 낯설뿐이다.

서점안에는 직장인으로 보이는 넥타이를 맨 남자 두분이 책상 사이에 서있었다. 무언가를 이야기하며 두런거리며 책을 고르고 있었다. 잠시 입구쪽에 서서 서점을 한번 둘러보았다. 무언가 달라진 듯 하면서도 달라지지 않은 듯 느껴졌다. 세월은 흐르고 까까머리 여드름 학생이었던 내가 다시 돌아왔는데 이곳은 포근하게 '이제 왔냐?'라고 말하는듯 했다. 왠지 푸근하다.

아내는 오자마자 별로 망설임도 없이 소설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아내도 책을 좋아한다. 아니 최근에는 직장때문에 바쁜 편인데도 오히려 나보다 훨씬 책을 많이 읽는다. 다만 헌책은 그리 좋아하지 않을뿐이다. 아내의 새책에 대한 그 깔끔함은 오히려 이런 헌책방은 낯설뿐이다. 물어보니 예전 학생때 참고서를 사러 헌책방을 가던것이 마지막인듯 하다. 그것도 좋겠지... 빙긋 웃고는 난 입구쪽 근처에 있던 책들부터 살펴보았다.

한때 내가 좋아하던 무술에 대한 책들이 반기고 있다. 펼쳐든 어느 책은 분명히 국내에서 발간된 책임에도 한자가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발행일자도 없는 그 책은 언뜻봐도 나는 60~70년대 책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책의 밑면을 살펴보았다. 나는 다행히 이 '아벨서점'의 가격을 주인이신 아주머니께 물어보지 않아도 알수있는 방법을 알고있다. 대부분의 책을 보면 그 책 밑면에 연필로 가격이 쓰여져 있기때문이다. '7'이었다. 이 책의 가격은 7,000원인 것이다.(또 다른 예를 들자면 '35'라고 쓰여진 책은 3,500원이다.)

반가웠다. 책들은 달라졌지만 그곳에 책은 여전히 있고 연필로 가격을 쓰는것도 그대로이다. 난 이곳저곳을 천천히 둘러보며 시간과 책과 먼지와 책향기를 즐겼다. 내가 고른 책은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와 '리눅스 그냥 재미로'였다. 그 사이 아내를 보니 1980년대 발간된 이름을 알수없는 소설을 읽고있었다. 살 생각이 없다면서도 재미있게 읽고 있는 모습이 즐겁다. 서점을 나서면서도 책들이 붙잡는 듯 아쉬움이 가득하다. 정가로는 두권을 합쳐 18,900원인 책을 7,500원에 샀으니 60%정도를 싸게 산 것이다. 그렇다고 책이 나쁜것도 아니다. 손때가 묻는 책의 옆면이 조금 세월의 흔적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주인들이 깨끗히 본것인지 아니면 선물을 받고는 펼쳐보지도 않았던 것인지 약간의 묵은 책향기를 제외하고는 새책과 같이 깨끗하다. 너무나 마음에 든다.

서점을 나와 동인천과 신포동을 두루두루 돌아보았다. 평일 낮이라고는 해도 퇴락한 것과 같이 거리가 한가하고 기운이 없다. 한때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인천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정도로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고 많은 가게가 비어있었다. 예전 자주가던 까페와 술집등의 가게등이 없어지거나 바뀐것이 낯설을뿐이다. 그러고보니 나도 동인천을 가본지도 몇년이 지난것이다. 내가 그 추억들을 이야기하며 중얼거리는 것을 본 아내가 핀잔을 준다. 옛날이야기라고... 마치 어른들이 6.25전쟁과 보리고개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그말에 언뜻 수긍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6.25는 50년이 넘은 이야기지만 난 아직 15년정도밖에 안된 이야기를 하는거라고...'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럼에도... 추억은 남아도 세월은 가는구나...

신포시장안에 위치한 '신포닭강정'에 가서 아내와 닭강정 반마리를 먹었다. TV에도 여러번 나왔던 닭강정 원조집이다. 6,000원... 예전에 2~3,000원일때가 생각나 야릇한 기분이다.

동인천과 신포동은 이제는 흘러간 인천의 옛 영화로운 거리이다. 유흥가였으며 중심가였던 때의 동인천은 이제 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거리를 지나가다 보이는 수십년은 족히 되어보이는 일본식의 집이나 100여년은 넘어보이는 건물... 이제는 그 흔적조차 찾을수는 없지만 한때 인천에서 가장 큰 영화관이었고 지금도 영업중인 100여년이 넘은 '애관극장'...(한때 이곳은 세계적인 연주가였던 번스타인과 전설적인 무희였던 최승희도 공연을 했던곳이다.)같은 야릇한 추억을 나눌수 있는 것들이 남아있는 곳이다.

헌책방... 그곳은 책을 사러가는 곳이 아닌 책을 발견하러 가는 곳이다.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나지 못해 마지막으로 책이 남아 머무는 곳이다. '아벨서점'... 이곳은 언제까지 가게 될까? 이곳도 이미 30년이 넘게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이 남아있는 서점이다. 앞으로 30년이 지나도 나와 다른 누군가를 기다리며 남아있기를 바라고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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