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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여친소를 보고...

by 시간의지배자 2007. 10. 20.
2004년 6월 7일 곽재용감독의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라는 영화를 보고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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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애인이랑 성남 야탑CGV에서 '여친소'(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를 보았다.

결과만 한마디로 말한다면 매우 실망스러웠다. 곽감독의 데뷔작인 '비오는날 수채화'부터 흥행에 참패해서 '엽기적인 그녀'감독을 할때까지 무려 9년을 침묵할수밖에 없었던 '가을여행'도 재미있게 보았었던 나로서는 이번 곽감독의 연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수가 없었다.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곽감독의 데뷔작부터 모든 전편을 보아왔던 나로서는 이해못할 이런 연출을 한것일까? 이건...솔직히 아무리 생각해봐도 투자자의 입김이 강했거나 곽감독연출이 한계에 달했다는 두가지 가정중 하나라고 밖에는 이해할수가 없다.

그 긴 장편의 시간동안 경진과 명훈이 어떻게 가까워졌는지 어떤 세밀한 심리묘사가 있었는지...전혀 없다... 그저 수갑한번 차고 총 쏠때 같이 있고 담 한번 같이 넘은것밖에 없다. 아, 수갑때문에 같은방에서 같이 잠을 잤다는것... 단지 그뿐이다.

그 아무런 이해못할 만남뒤 심리적인 변화에 대한 설명도 없이 갑자기 경진이 명훈의 수업시간에 찾아오고 자기가 여자친구라고 소개하는게 끝이다. 도대체 이게 뭔지... '엽기적인 그녀'와 '클래식'에서의 그 재기넘치던 곽감독의 연출력은 어디로 사라진거냐? 주인공의 손짓과 눈짓 한번에 담긴 뜻에 감탄하며 다시 또 보게 만든 곽감독은 어디로 간거냐? 마치 이건 대가가 그림을 그리기전 엉성하게 스케치한 영화를 본듯한 느낌이었다.

이게 정말 곽감독의 연출력에 한계가 온것이라면 곽감독은 다시 몇년간 은둔을 해야할것을 권할수밖에 없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전지현 CF 종합선물이나 안겨주고 이해못할 앵글과 화면전환, 그 탁월하던 음악선택 능력은 다 어디로 사라진것인가?

이건 마치 '반지의 제왕'을 감독하던 감독이 '고질라'를 들고 나온 것같은 이해못할 일이었다. 어째서인가? 작년 그 비판에도 마지않고 흥행 1000만명을 돌파한 실미도의 강우석감독은 저리가라 할 정도의 엄청난 연출력의 엉성함을 보여주었다.

그 시간과 공간의 활용, 배치와 배우들의 몸짓하나까지 다 살아움직이게 하던 곽재용감독은 어디로 간것이란 말인가? 마치 얼굴만 똑같은 사람이 나타나 본인은 저 다른 차원으로 보내버리고 연출을 한것같이 엉성한 연출과 시나리오, 화면구성, 음악선택의 실패에 실망을 넘어 분노까지 느꼈다.

이 시대에 우리나라가 전 아시아에 자신있게 내놓을 수 있었던 유일한 로맨티스트 영화감독인 곽감독은 도대체 언제 사라진것이냐? '클래식'을 연출하고 나서 돈맛을 알게 된것인가? 돈맛도 좋다. 성공은 돈을 기반으로 한것이니... 하지만 곽감독의 연출력이라면 돈이 감독의 연출력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곽감독의 연출력이 돈을 불러모을수 있을 감독이다. 그 영활한 우리의 곽감독은 어디로 간것인가?

난 비평가도 아니다. 영화연출에 대한것은 눈꼽만큼도 모른다. 다만 난 영화적 재미는 아는 영화팬일뿐이다. 단순한 영화팬인 내가봐도 이것은 연출도 시나리오도, 음악도 대 실패일뿐이다. 얼마나 영화에 실망을 했는지 그 엉성한 콩글리쉬 발음으로 주제가를 부르는 여자가수에 대한 비난까지 수그러들 지경이었다.

곽감독은 선택해야 할때가 온것같다. 만일 영화적 연출력이 다 바닥난 것이라면 예전처럼 다시 얼마동안 휴식기를 가지라고 권하고 싶다. 그 재기발랄했던 곽감독을 완전히 포기할수 없어 이런 권고를 할수밖에 없는 나로서는 가슴아픈일이다. 만일 영화적 연출에 대해 투자사와 투자자가 압력을 가한것때문에 이런 엉성한 영화가 나왔다면 곽감독은 그들을 과감히 포기해야한다. 범 아시아적인 영화라는것이 감독으로서 포기하기 어렵다는 것은 이해한다. 허나 그러면 무슨 소용인가. 이런 엉성한 영화들이 계속 나온다면 어차피 곽감독은 아시아로부터 모두 잊혀져버리게 될테인데...

위에 말했듯이 곽감독의 연출력은 돈에 지배를 받지않고 감독이 돈을 지배할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지니고있다. 만일 돈때문에... 범 아시아적인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다는것때문에 이런 작품이 나왔다면 나는 곽감독이 재삼재사 고심하시기를 권하고 싶다. 곽감독적인... 그 영화가 아시아를 흔들수 있음을 전편들에서 이미 보여주지 않았던가... 투자자때문에 이런 엉성한 영화가 나왔다면 다시 국내로 눈을 돌리던가 차라리 일본으로 방향을 돌리라고 권하고싶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곽감독의 이번 영화가 감독의 연출력때문이 아닌 그런쪽이기를 바라고 있다.

곽재용 감독님, 나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비오는날 수채화'에서 옥소리씨가 모자를 쓰고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던 그 모습을, '가을여행'에서 이경영씨가 목검을 들고 길 한가운데 서서 달려오는 차를 기다리던 모습을, '비오는날 수채화 2'에서 지수와 지혜가 창을 사이에두고 손을 잡을때의 모습을, '엽기적인 그녀'에서 견우가 그녀와 선을 본 남자에게 그녀를 위해 지켜야할 10가지를 말해주고 소주를 들이킬때를, '클래식'에서 준하가 베트남으로 떠날때 주희를 보며 오열할때를.... 그때 당신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