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혼자 긁적이기

무제-0003

by 시간의지배자 2007. 10. 19.
1992년 11월 20일 역시 무제-0001과 같이 코텔 글나래에 올렸던 글입니다.(이때가 하이텔때인지 코텔때인지 헷갈리는군요. 제 기억으로는 코텔때로 기억합니다만...) 역시 그다지 구상같은것도 없이 생각나는대로 쓴 글이었습니다.

그후 글을 읽다 편지(메일이 아닙니다.^^;;)을 보내주션던 몇분이 한밤중에 글을 읽다가 끝에서 섬뜻해졌다는 글들을 보내주셨더군요.(새벽 2시 49분에 올렸던 글이더군요..^^) 당시 어느 여성잡지에서 낙태에 대한 심층취재를 한적이 있는데 그 이후 전 낙태반대론자가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우연히 아무생각없이 쓰게된 글이었거든요.

이 글을 쓴후 몇개월후 MBC에서 낙태아가 된 귀신이 그 부모들과 사람들을 살해한다는 심은하씨 주연의 드라마 'M'이 방송되었는데 이 글과 비슷한 면이 있었습니다.^^
+++++++++++++++++++++++++++++++++++++++++++++++++++++++++++++++++++++++++++++++++++++++

제목:무제-0003
쓴사람:김승규
버전:0.1

언제부터인가 나의 주위에 항상 그 놈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나의 침실이나 화장실까지 가리지 않고 그 놈은 나를 쫓아다녔다.지겨우리만큼 집요하고 질리도록 소름이 끼쳤다. 그 놈이 언제부터 나의 주위를 겉돌기 시작했는지는 확실하지는 않다.대략 1,2년정도...

내가 그놈을 처음 느낀 것은 가위에 눌렸을때였다.갑자기 수면에 빠진듯하는 묘한 기분을 느끼고 약간 당황해하고 있는 나에게 그 놈은 소리도 없이 접근해 와서는 크게 비웃었다.그 놈의 비웃음! 제기랄... 그 놈 자체보다는 그 비웃음이 마음에 안들었다.욕이라도 한바탕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그렇지만 않다면 저 놈의 턱을 날려버리고 싶은데...

그 날 이후로 그 놈은 수시로 내게 찾아왔다.물론 거의가 가위가 눌렸을 때이지만...어제밤에도 찾아와 나를 크게 비웃고는 돌아갔다.제길! 네 놈이 심령과학 나부랭이들이 말하는 척신이라도 되는가 보지.그런데,그 놈의 얼굴은 왜 나에게 보이지 않는거냐? 그리 잘난 얼굴이라도 되는가?

몸이 뻐근함을 느끼고 침대위에서 천천히 일어났다.옆에서는 어제저녁 내가 하룻밤을 산 여자가 아직도 곤히 자고 있었다.나는 그녀의 엉덩이를 한번 툭 건드리고는 몸을 일으켜 샤워를 하기로 했다.어젯밤의 일전(一戰)때문인지(?) 몸이 찌뿌둥했지만 상관없다.출장일이야 어제 끝냈으니 오늘까지는 늦장을 부려도 회사에서는 알지 못할것이다.

샤워를 위해 화장실로 들어간 나는 흠카했다.무언가 알수 없지만 그 곳에서는 음울한 기운이 피워오르는 듯 했다.갑자기 샤워를 하기가 싫어졌다.나는 그런 기분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라도 당당하게 들어갔다. 물은 따뜻했다.단숨에 음침한 기분이 사라지는 듯 했다.머리의 물기를 대충 털어내고는 화장실문을 열고는 밖으로 나왔다.여자는 이미 사라져 있었 다.대충 분위기를 알고는 나간것 같았다.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갑을 뒤져 보았다.없어진 것은 없었다.이곳에서 소개한 여자이니 믿을만은 하군.

나는 지갑을 대충 쑤셔넣고는 담배를 집어들려고 했다.순간 나는 담배옆에 놓여진 쪽지를 볼수가 있었다.

-- 환영합니다. --

무엇을 환영한다는 것일까? 그 여자가 이 쪽지를 썼을까? 그렇다면 왜 환영한다는 쪽지를 썼을까? 의문이 일었지만 나는 곧 담배를 피워물고는 그 일을 잃어버렸다.

아침식사를 끝내고 호텔을 나섰다.주차장으로 향한 나는 자동차문을 열다 멈추었다.누군가 있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분명히 그 놈일테지...나는 입술을 깨물고는 자동차문을 열고 시동을 걸었다.집에서는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것이다.나는 희미하게 웃음을 짓고는 생각했다.

'네 놈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그렇게 노려보거나 비웃기만 해서 는 아무 위협도 되지 못한다.행동을 해야지.행동을.'

이상하게도 오늘 고속도로는 막힘이 없다.왠만하면 막힐만도 한데...처음에는 가끔 눈에 띄던 차들도 이제는 한대도 보이지 않는다.나는 갑자기 두려움이 왈칵 솟았다.왜일까? 이 두려움은...

갑자기 펑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제멋대로 돌았다.나는 간신히 차를 세울 수가 있었다.밖으로 나온 나는 욕을 한바탕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타이어를 간지가 일주일도 안 되었는데...이번에 올라가면 찾아가서 한바탕 욕이라도 해야겠군.예비타이어를 찾아보았으나 있을리 만무했다.새 타이어를 갈았기에 맘놓고 그만 예비타이어를 갖고 오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어딘가에 전화가 있을텐데...집들은 보이지도 않았다.우선은 전화를 찾아야 한다.왠만하면 지나가는 차도 있으련만 아무차도 보이지 않았다.제기랄! 전화를 찾아서 걸어가야 하는가...

차가 보이지 않을때까지 걸었으나 전화는 찾을수가 없었다.나는 속으로 고속도로에 대해 많은 욕을 퍼부었다.그 많은 돈을 받아서 다 어디다 쓴담... 그 돈으로 고속도로에 전화를 놓는다고 하더니 이건 순 거짓말이었잖아...

순간 나는 쾌재를 불렀다.저 멀리에서 달려오는 차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그 차를 보고는 기분이 풀렸으나 점점 내게 다가올수록 알수없는 공포감이 몰려왔다. 차는 나의 손길을 보고는 천천히 멈췄다.

"차가 고장이 나셨나 보지요?"
"그렇읍니다.죄송하지만 전화가 있는곳 까지만 태워주시겠읍니까?"
"타시지요."

스무살이 갓 넘었을만한 나이의 청년은 나를 부담없이 태워주었다.내가 막 그의 자동차의 안전벧트를 매었을때 그가 말했다.

"환영합니다."

나는 아침의 호텔에서의 일이 생각나 기분이 나빠졌다.그러나,지금같은 상황에서 내릴수는 없었다.만일 이번에 내린다면 또 얼마만큼 지나가는 차를 기다려야 할지 알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지요?"

나는 그에게 환영한다고 말한 뜻을 물었다.그는 나를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정말 재수없는 놈이다.그리고 나는 순간 머리끝이 쭈삣해지는 것을 느꼈다.정말 재수없게도 그놈과 똑같은 웃음이었다.

"아! 그거요.말 그대로입니다."
"말 그대로나니요? 저는 잘 이해할수가 없읍니다만..."
"저승으로 가시는 것을 환영한다는 말씀입니다."

나는 굉장히 불쾌해졌다.차를 태워준다고는 하지만 농담이 지나치지 않은가!

"농담이 지나치시군요."
"농담이라구요? 아닙니다.농담이 아녜요.성함이 송 인규씨지요? 당신은 사년전 아이를 갖고 있던 당신의 약혼녀를 버렸읍니다.그리고는 당신은 출세를 위해 회장딸과 결혼을 했지요.당신의 약혼녀는 너무나 절망한 나머지 그만 자살을 하고 말았지요.그 자살한 장소가 바로 당신이 투숙하고
있던 호텔의 바로 702호실이지요.당신은 '환영합니다'라고 쓰여진 쪽지를 볼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놈이다.그렇다.이 놈이다.나는 그만 덫에 걸렸구나.어떻게든 내려야 한다.나는 온 힘을 다해 안전벧트를 풀려고 했으나 갑자기 힘이 급격히 빠지는 것을 느꼈다.

"소용없어요.이젠 끝입니다.당신이 궁금하지 않게 이야기를 계속할까요? 그 쪽지는 그곳에서 죽어간 당신의 약혼녀의 원한이 남긴 것입니다.그 약혼녀가 자살한후 그녀의 남동생이 당신을 찾아오자 당신은 그가 떠벌이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마저 살해했지요.비록 그를 바닷물에 수장시켜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그도 당신에 대한 원한이 사무쳤지요.그래서 제가 이렇게 당신을 마중나온 것입니다.환영합니다.저승으로 가시는 것을..."

말도 안된다.이건 꿈이다.나는 또 분명히 가위에 눌린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한바탕 꿈일거야.이건 꿈이야!

"그렇다면......당신...당신은 누구요?"

그는 예의없이 그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는 바로 그때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은 당신의 아들입니다.저는 원래 이렇게 당신에게 나타날수는 없지만 어머님의 한(恨)과 외삼촌의 한(恨)의 결정체가 워낙 지독해 이렇게 나설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자,아버님.이젠 그만 가실까요?"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가운데 아무것도 느낄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나는 정말 죽게 되는 것일까?

'혼자 긁적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젯밤 꿈...  (0) 2007.10.19
무제-0005  (0) 2007.10.19
무제-0004  (0) 2007.10.19
무제 0001  (0) 2007.10.19
블로그를 옮기다.  (0) 2007.10.19